소요산을 다녀와서

분류없음 | 2007/08/25 18:18 | 강복희
국어 교과서에 소요산역에서 역장님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한다고 하고, 또한 국어 선생님 고향이기도 하다고 하셔서 멀지 않는 거리라 한번 쯤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와 다녀오기로 했다. 많은 볼거리를 기대를 하면서...

부평역에서 소요산 가는 전천을 타고 가면서 마음은 이미 그곳으로 향하고 시내를 벗어나 외각을 달리는 전철안에서 지나가는 푸른 산과 들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풍경을 바라보며 2시간 가량 지나고 나니 소요산이란다.

옛 역사는 없어지고 말끔하게 단장되어 전철역과 연결된 역 앞에는 소일거리 없는 나이드신 분들이 무료승차되는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또는 인천과 경기도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오신다는 이곳은 그 분들을 위한 무료승차권 구매하는 곳이 따로 준비되어 있는데 요즈음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고령화 시대를 부분적이나마 잘 나타난 곳이였다. 이곳까지 오실 수 있는 것 하나 만이라도 그 분들은 행복된 삶을 사시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이들어 건강이 좋지 않을 수가 많기 때문이다.

내리자마자 역사 앞 큰길에서는 의정부와 가까워 훈련중인지 장갑차 5-6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는 이곳은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워 늘 군인들이 상주하며 경계를 느추지 않는 그래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낯설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입구를 찾아 올라가는 길가에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과 삼삼오오 무리지어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큰 비 오면 계곡이였을 곳에 이르려 흐르는 물가에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느라 발을 담그고 있기도 하고 옆의 평지에서는 돗자리를 펴놓고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땀을 식히기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아 사 가지고 간 옥수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내려오는 길에 홍덕문 선생 기념비(향토유적 제 3호)를 읽어봤다.

"구한말 애국지사였던 선생은 국권피탈에 분노하던 중 1919년 음력 2월 25일 정오에 만세운동을 지휘하다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여 1923년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문득 얼마 전 국어 시간에 이육사에 대해 설명하시며 독립 운동을 통해서  나라 사랑을 몸 바쳐 행했던 분들에 대한 선생님의 뜨거운 마음이 생각났다. 나라 곳곳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생명 바쳐 지킨 나라이기에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에 그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야겠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다짐하며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어 몸과 마음에 쉼을 얻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옥예가 올린 사진퍼옴

분류없음 | 2007/08/18 23:26 | 강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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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2일 합천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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